5世 우(祐)
父 : 윤유(允濡) 祖父 : 득창 (得昌)
상계(上系)
본관은 아주(鵝洲). 호는 퇴재(退齋). 아버지는 신윤유(申允濡)로 아주 신씨(鵝洲 申氏) 의성 입향조이다. 부인은 약목 유씨(若木 柳氏)이다.
신우(申祐)는 생몰년 미상이며, 고려 충혜왕 때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봉상(奉常)·사헌부 장령(司憲府 掌令)을 거쳐 호군(護軍)에 이르렀다. 일설에는 전라도 안렴사(全羅道 安廉使)에 이르렀다고도 한다.
지극한 효성으로 부친의 3년상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그 자리에 대나무 두 그루가 자랐다는 것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(旌閭)를 내리고 살던 마을을 효자리(孝子里)라고 불렀다.
일찍이 정몽주(鄭夢周)에게 영향을 받아 고려 멸망 후 고려에 대한 충성심으로 조선이 개국하자 조카사위인 길재(吉再)와 고향에 은거하였고 이성계가 등극하여 형조판서(刑曹判書)를 제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고 한다.
그의 행실은 『신증동국여지승람(新增東國輿地勝覽)』·『삼강행실록(三綱行實錄)』에 실려 있다.
문집으로 『퇴재선생실기(退齋先生實紀)』 2권이 있다.